길림시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용담산에 위치하고 있다. 용담산은 해발 388m로 산세가 빼어나고 웅장하며, 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전체적인 지형은 주변의 산세가 높고 성안은 낮아 마치 분지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혼합하여 축조하였는데, 다만 서쪽 성벽의 일부는 순수하게 황토흙을 다져 쌓았다. 밑바닥 너비는 3∼10m, 윗부분의 너비는 1∼2m 정도이며, 현재 남아 있는 높이는 2∼10m 정도이다. 성벽의 높낮이는 일정치 않아 지세가 높은 곳은 낮게 쌓고, 지세가 낮은 곳은 높게 쌓았다. 성벽의 길이는 약 2,396m이고, 산성의 평면은 불규칙하다.
동서남북 사면의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는 길이 20∼25m, 너비 6∼9m의 평탄한 각대(角臺)를 구축하였는데, 모두 누각(樓閣)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남 · 북 · 서쪽에 3곳이 있으며, 서문은 폭이 24m 정도로 산성의 정문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안의 서북쪽에는 용담(龍潭)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어, 산성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동서 길이 52.8m, 남북 길이 25.7m, 깊이 9.08m로 매우 크며, 다듬은 돌로 3층의 계단 형태로 축조하였다. 연못 북쪽에는 성벽까지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흘러간다. 이로써 연못과 성벽이 동시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안의 서남쪽에는 직경 10.6m 깊이 2∼3m의 원형의 돌로 쌓은 구덩이가 있는데, 한뢰(旱牢)라고 부른다. 군사물자의 저장고로 추정된다. 성안에서는 고구려 후기의 기와편과 철화살촉 · 철도끼 · 철못이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연못에서는 요(遼) · 금(金)대의 유물도 출토되어, 상당히 후대에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담산성에서 서남으로 2.5km 떨어진 동단산(東團山)에는 고구려의 동단산성이 있으며, 서북으로 12km 떨어진 곳에는 삼도령자산성(三道嶺子山城)이 있다. 이 두 성은 용담산성의 위성(衛城)으로 기능하였을 것이다. 길림지역은 본래 부여(夫餘)의 중심지로서, 용담산성은 고구려가 부여를 정복한 후 축조한 산성으로 추정되어, 북부여성(北夫餘城)에 비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