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질과 근원을 추구하는 글이다. ‘원’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당대(唐代) 한유(韓愈)가 처음으로 「원도(原道)」·「원성(原性)」·「원인(原人)」·「원귀(原鬼)」·「원훼(原毁)」 등의 5원을 지음으로써 생긴 문체이다.
한유가 근본으로 한 것은 대개 회남자(淮南子)의 「원도(原道)」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원의 문체는 억양곡절(抑揚曲折 ; 혹은 억누르고 혹은 찬양함이 곡진함)과 소원천유(溯源闡幽 : 어떤 사물이나 일의 근원을 찾아 밝히고 상고함과 알려지지 아니한 이치를 밝힘)를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논설체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 뒤에 황종희(黃宗羲)의 「원군(原君)」이 명편으로 일컬어진다.
우리 나라에도 이곡(李穀)의 「원수한(原水旱)」과 이첨(李詹)의 「원수(原水)」가 『동문선』에 전한다. 「원수」의 내용은 세상 사람들이 물의 근원은 모르면서 보이는 물만을 그 전부인 줄로 아는 무지를 개탄하여 쓴 것이다. 겉보기에는 더러운 물도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깨끗한 물과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윗사람이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백성은 선악으로 갈라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물의 근원에 대한 논의를 인간사에 대한 경계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자신의 주견을 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곡의 「원수한」은 가뭄이나 수해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진다.
재해는 하늘에 있다기보다는 목민관(牧民官)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한다. 자연의 물체를 정치하는 인간사에 결부시키고 있음으로써 원의 문체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그 제목에 있어 원자를 앞에 놓아 원모(原某)라 하기도 하고, 혹은 뒤에 놓아 모원(某原)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별다른 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