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가문 ()

당송팔대가문초
당송팔대가문초
한문학
문헌
조선시대 고문(古文)의 체법(體法)을 익히기 위한 고문선집.
내용 요약

『당송팔가문』은 조선 시대 고문의 체법(體法)을 익히기 위한 고문선집이다. 문장은 실무와 연관된 양식으로, 문신으로 행세하기 위해서 문장 수업은 필수였다. 이에 선비들은 한(韓)·유(柳)·구(歐)·소(蘇)의 문집을 구하여 익히기에 급급하였다. 『당송팔가문』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이름난 문장가 8인의 글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 책에는 당나라의 한유, 유종원, 송나라의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증공, 왕안석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당송팔가문』은 우리나라 한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다. 순문학적 측면에서는 문학의 발전을 저해한 면도 있다.

정의
조선시대 고문(古文)의 체법(體法)을 익히기 위한 고문선집.
개설

'당송팔가문'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이름난 문장가 8인의 글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명나라 모곤(茅坤)이 산정한 『당송팔가문초(唐宋八家文抄)』를 가리킨다. 그리고 청나라 심덕잠(沈德潛)이 찬한 『팔가문독본(八家文讀本)』도 크게는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의 대칭으로 쓰인다.

서지적 사항

6권 3책. 목판본. 『어정당송팔자백선』은 1781년(정조 5) 팔가문 가운데서 100편을 정선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는 당나라 사람의 것으로 한유(韓愈)의 글이 30편, 유종원(柳宗元)의 글이 15편, 송나라 사람의 것으로 구양수(歐陽脩)의 글이 15편, 소순(蘇洵)의 글이 5편, 소식(蘇軾)의 글이 20편, 소철(蘇轍)의 글이 5편, 증공(曾鞏)의 글이 3편, 왕안석(王安石)의 글이 7편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에는 시가 풍류를 대변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문장은 실무와 긴절히 연관된 문학의 한 양식이었다. 따라서, 문장학은 입신하여 이름을 날리기 위한 관건이었다. 문신으로 행세하는 데도 그 성공여부가 문장에 좌우되었다. 그러므로 문장은 선비수업에 있어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이었다.

선비들은 한(韓)·유(柳)·구(歐)·소(蘇)의 문집을 구하여 이를 익히기에 급급하였는데, 그 권질(卷帙)이 너무나 호번(浩繁 : 넓고 큼직하여 번다함.)하여 명나라 모곤이 엮은 『당송팔가문초』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164권이나 되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고람(考覽 ; 자세히 살펴보거나 점검하면서 읽음)하기도 불편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우리 실정에 맞는 팔가문을 선정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 때에 와서야 어정(御定)으로 『팔자백선』을 찬정하기에 이른 듯하다.

『당송팔가문』의 구성과 성격을 좀더 명확히 살피기 위하여 모곤의 『당송팔가문초』와 심덕잠의 『팔가문독본』을 대비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팔가 각 인에 대한 선호도를 대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선호도에 대한 증감의 폭이 일정하지는 않았다.

고려시대는 한 번 과거가 발표될 때마다 30인의 소식이 탄생하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식의 문체가 인기절정이었다. 조선시대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구양수의 인기가 꾸준하여 그를 배운 이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창협(金昌協)과 이건창(李建昌)을 들 수 있다.

한유를 배우려고 한 사람은 많았지만, 제대로 한유를 배웠다고 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의 문장이 호방하여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증공은 문장이 비교적 평이하고 유순하여 구양수와 공통성이 있으므로 조선 후기에 그를 배워 대성한 이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홍석주(洪奭周)·김매순(金邁淳)을 들 수 있다.

왕안석은 관각문자(館閣文字)에 특징이 있어서 그 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이 배웠으나, 뚜렷하게 추천할 만한 사람은 없다.

의의와 평가

『당송팔가문』을 통하여 배운 이들은 ‘문이재도(文以載道)’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고문사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한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다. 그러나 순문학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문학의 발전을 저해한 면도 적지 않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도련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