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가 정승에 이르렀는데도 주9이 고요하고 겸허해 처하기를 평민과 같이하였다. 그리고 학문이 주10하고 의리에도 정통해 시서역예(詩書易禮)의 교훈과 성명이기(性命理氣)의 철학에 달통하였다. 그는 특히 도학가적인 문학론을 전개해 “심외무부(心外無父)요 도외무심(道外無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문(文)’이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닦아지고 학문이 쌓이면 그것이 덕(德)도 되고 도(道)도 되며, 어(語)도 되고 문도 된다. 바로 도 · 덕 · 어 · 문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은 마음의 공부도 없이 입만으로 인의성경(仁義誠敬)을 외치므로 말은 문과 맞지 않고 마음은 말과 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11 · 주12의 고문(古文)을 소급해 올라가야 한다면서 의고문가(擬古文家: 秦漢派)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진 · 한의 고문은 주13 · 주14 같은 대문호도 미칠 수 없음을 탄식했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를 배우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삼라만상이 쉬지 않고 변하므로 지금에 와서 복고가 안 되는 것은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형세가 그렇게 되어 안 되는 것이라며 시의에 맞는 진솔한 글을 쓸 것을 역설하였다.
김윤식(金允植)은 “보취(步趣)에 법도가 있어 주15의 밖을 넘지 아니하며, 우여용용(紆餘舂容)해 감격적이면서도 상하지 않으니 실로 주16의 글이다.”라고 평하였다.
저서로는 『연천집』 · 『학해(學海)』 · 『영가삼이집(永嘉三怡集)』 · 『동사세가(東史世家)』 · 『학강산필(鶴岡散筆)』 등이 있고, 편서로는 『속사략익전(續史略翼箋)』 · 『상예회수(象藝薈粹)』 · 『풍산세고(豊山世稿)』 · 『대기지의(戴記志疑)』 · 『마방통휘(麻方統彙)』 · 『상서보전(尙書補傳)』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