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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개념
자신에 대한 경계 · 타인의 공적 축송 · 사물의 내력 · 고인의 일생 등을 금석 · 기물 · 비석 따위에 기록하는 한문문체.
목차
정의
자신에 대한 경계 · 타인의 공적 축송 · 사물의 내력 · 고인의 일생 등을 금석 · 기물 · 비석 따위에 기록하는 한문문체.
내용

명(銘)의 뜻은 ‘새긴다(각야 刻也)’이다. 곧 명은 기물에 글을 새겨넣는다는 뜻을 지닌다. 특히, 청동으로 주조된 솥(정 鼎) 등이 옛날에는 보기의 대표적인 기물이다. 그러므로 기물은 당시의 일상적인 도구가 아니고, 보기(寶器)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주로 청동에 새겼기 때문에 명이라고 쓰게 되었던 것이다.

후대에 오면서 청동의 보기뿐만 아니라, 산천·궁실·문정(門井) 등의 사물에 모두 명사(銘詞)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동기에 새긴 것외에 돌에 새긴 것도 명이라고 일컬었다. 명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동문선≫에 보이는 가장 오래된 명은 <도솔원종명 兜率院鐘銘>이다. 자상(慈尙)이라는 스님이 발원하여 만든 도솔원의 종에 김부식(金富軾)이 쓴 명이다. ≪동문선≫에는 이 밖에 이규보(李奎報)·이색(李穡) 등의 명이 70여편 수록되어 있다. 그 이후에는 명의 제작이 그리 융성하지 못하였고, 다만 묘지명·묘갈명·탑명 그리고 좌우명 등이 많이 지어졌다.

형식은 운문으로서 대개 격구로 압운이 되어 있다. 자수는 대부분 4언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3언·5언·7언 또는 잡체로 넘나드는 경우도 있다. 명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명을 쓰게 된 동기 등을 밝혀주는 병서(倂序)가 수반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묘지명이나 묘갈명의 경우는 반드시 고인의 행적을 상세히 산문으로 기록한 서문이 따른다. 명은 이 서에 이어 서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운문의 형식을 담아 놓은 것이다.

명문의 내용은 대개 사건의 전말이나, 기물의 내력, 유래에 관한 기록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명은 자연히 사람의 공적을 기리는 일도 동반한다. 그리고 명문 가운데에는 경계의 의미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훈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아침, 저녁으로 보는 그릇에 담는다. 늘 곁에 두고 접하는 기물에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는 글을 적어놓는 좌우명 등이 대표적이다.

≪문체명변 文體明辨≫에서는 “그 기물에 이름을 붙여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다(名其器物以自警也).”라고 하였다. 명을 직접 기물에 새겨 훈계를 삼을 수도 있고, 그 사물에 자성하는 뜻을 써서 마음에 새길 수도 있다. 탕왕(湯王)이 욕조에 새겼다고 하는 <반명 盤銘>이 대표적이다. 이후에 지어진 여러 가지의 물명(物名)을 비롯하여 좌우명 등이 이에 속한다.

훌륭한 덕과 착한 행실이 있거나 공렬이 있어 세상의 전범이 될만할 경우에는 그의 공적을 축송하기 위해 명을 짓는다. 그 사람이 죽어버린 뒤에 그의 행의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릇을 주조하여 명을 새겨넣는다. 그러므로써 무궁하게 후세에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솥이나 종이나 제기와 같은 곳에 새겨두는 경우가 있다.

≪예기≫의 <제통 祭統>에서 “명이란 것은 그 선조 가운데 덕선(德善)·공렬·훈로(勳勞)·경상(慶賞)·성명(聲名)이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을 논찬하여 제기에 새겨 저절로 그 이름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석명 釋名≫에서는 “아름다운 공덕을 남기어 이름을 부르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명이 이처럼 남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자칫하면 지나치게 칭찬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명은 “칭찬의 뜻을 겸하기 때문에 그 문체는 부드러움을 귀하게 여긴다.”라고도 하고, “깊이가 있으면서 절실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성덕왕의 대업을 종에 새겨 부처의 가호와 함께 공업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바라며 지은 <성덕왕신종명 聖德王神鐘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대부터 내려오던 보기에 또는 어떤 일이 완성되었을 때에, 그 그릇의 내력과 그 일의 전말을 기록하여 그 사실이 인멸하지 않도록 글을 지어 넣은 것도 있다. 보기는 전대에 무슨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조된 것이고, 명문은 그 사건의 기록을 포함한다. 조선 왕조가 송도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나서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 거기에 명을 새긴 권근(權近)의 <주종명 鑄鐘銘>을 예로 들 수 있다.

<문부 文賦>에서는 “널리 아는 것을 요약하여 부드럽게 윤색한 형태”라고 하였다. 바로 내용을 간략히 기록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명의 형식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묘명·탑명은 고인의 생애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지은 글이다.

따라서 고인의 생애를 담은 인적사항, 곧 행적·공업·학덕·사상 등을 압축하여 운문의 형식에 담은 것이다. ≪예기≫<제통>에서 “명이란 것은 선조의 아름다움을 후세에 밝게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대변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동문선(東文選)』
『임하필기(林下筆記)』
『문체명변(文體明辨)』
『문심조룡(文心雕龍)』
『한문학개론』(이종찬, 이우출판사, 1981)
『漢文入門』(小川環樹, 西田太一郞, 岩波書店, 1961)
「한국종의 명에 대하여」(최신호, 『동양학』 17집,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1987)
집필자
김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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