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재난고 ()

한문학
문헌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577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차
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577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4권 2책. 목판본. 권응인(權應仁)이 편찬한 것을 1577년(선조 10) 외손 윤대승(尹大承)이 성주(星州)에서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카 사순(思順)의 <대관재난고서 大觀齋亂藁序>, 안처성(安處誠)의 <대관재집찬 大觀齋集贊>, 홍언필(洪彦弼)의 <서대관재집고풍 書大觀齋集古風>, 그리고 박민헌(朴民獻)의 <대관재난고서 大觀齋亂藁序>가 있고, 권말에 김극일(金克一)의 <서대관재후 書大觀齋後>와 권응인의 발문이 있다.

내용

권1∼3에 부 14편, 사(辭) 3편, 고시 88수, 율시 112수, 절구 346수, 권4에 몽기(夢記) 1편, 몽기에 대한 심사순의 부시(附詩)인 <경서1절 經書一絶> 1수, <몽사자연지 夢謝自然志> 1편, 서(書) 2편, 증서(贈序) 1편, 해(解) 1편, 문 1편, 계문(契文) 1편, 제문 5편, 장 7편, 명 1편, 계(誡) 1편, 그리고 서경덕(徐敬德)의 <송대관자설 送大觀子說> 1편과 절구 3수가 첨부되어 있다.

부는 ≪장자≫의 <인간세 人間世>에서 따온 내용인 <산목자구 山木自求>가 특이하며, 이 밖에도 <호접몽 胡蝶夢>·<군호목호 君乎牧乎>·<연독 緣督> 등도 모두 ≪장자≫에 있는 내용을 작품화한 것이다.

그리고 <달관부 達觀賦>·<광한전부 廣寒殿賦> 등도 물외에 자적하는 달관의 경지 및 심회를 읊은 것인데, 특히 <대관부 大觀賦>와 <소관부 小觀賦>에서는 달인(達人)과 세인(世人)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각각 ‘대관’과 ‘소관’으로 간주하고, 두 글에서 양자의 득실을 논하였다.

그리고 좌상이던 이극균(李克均)이 양계(兩界)에 장성(長城)을 쌓으려고 하는 데 대하여 불가함을 역설한 <축장성부 築長城賦>에는 이극균의 오활(迂闊)한 면과 아울러 애민의식과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작가의 현실관이 잘 나타나 있다.

<사미인사 思美人辭>는 ≪백제사 百濟史≫에서 의자왕 때의 일을 보고 강개함을 이기지 못하고 충신의 심경을 읊은 것으로,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저자의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시는 대체로 당시풍(唐詩風)을 지닌 것으로 조선 초기 이래 송시를 존중하던 시풍이 점차 학당(學唐)으로 변모되어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내용은 실생활에서 보고 느낀 단상을 시적 형식을 빌려 표현한 것이 대부분으로, <중종대왕만 中宗大王挽>·<인종대왕만 仁宗大王挽>·<장경왕후만 章敬王后挽>등의 만시, <증서가구 贈徐可久>·<증의중 贈宜仲>·<시제생사면기지 示諸生使勉其志> 등 교유하던 인물과 주고받은 시, 그리고 <송도사시영 松都四時詠>·<춘일촌행 春日村行> 등 여행하면서 객회를 자연에 부쳐 읊은 것들이 있다.

잡저인 <몽기>는 일명 ‘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이라고도 하는데,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이는 1529년(중종 24)에 지은 것으로 몽유록계 소설의 효시가 된다. 내용은 꿈의 형식을 빌려 표면적으로는 우리 나라 시인의 서열을 정하고 그의 시론을 삽입하여 여기에 중국의 문인과 대비한 글이지만, 결국 현실의 부귀나 영화도 허망하다는 자신의 소견을 희화적 형식(戱化的形式)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몽사자연지>는 <몽기>의 속편으로서 도교적 사상을 지닌 작품인데, <몽기>보다 짜임새가 있으며 표현상 과장이 적으며 묘사는 치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호사문고(蓬左文庫)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양심당집 養心堂集≫ 등과 함께 영인,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대관집해제』(송재소, 아세아문화사, 1984)
「몽유록의 역사의식과 유형적특질」(정학성, 『관악어문학』 2,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 1977)
「대관재의 몽기·몽사자연지고」(이원주, 『한국학논총』 5, 계명대학교한국학연구소, 1982)
집필자
김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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