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관 중 가장 높은 관직이다. 대개 영의정·좌의정·우의정 3인이 겸하였다. 기록상 영경연사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1390년(공양왕 2) 1월에 문하시중(종1품)과 수(守)문하시중을 이에 임명한 것에서 비롯된다.
조선왕조가 시작된 1392년(태조 1) 7월에 정비된 관제를 보면 경연관직에 영사는 정원이 1인으로 시중 이상이 겸임하게 되어 있다. 세종 즉위 초에는 영사가 2인이었다가 그뒤 3인이 되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성종 즉위 초에는 시원임(時原任) 정승을 모두 영경연사에 임명한 적도 있다. 원래 영사는 경연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성종 이후에는 영사 1인이 교대로 조강(朝講)에 참석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강의는 담당하지 않고 강의 후의 토론에만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