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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우홍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2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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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우홍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2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4권 1책. 목활자본. 1882년(고종 19) 5세손 택영(宅瑛)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도용(權道溶)의 서문과 권말에 택영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3수, 권2에 서(書) 17편, 권3에 기(記) 3편, 발(跋) 2편, 명(銘) 3편, 잠(箴) 3편, 찬(贊) 1편, 잡저 4편, 제문 6편, 권4에 부록으로 행장·유사·묘갈명 각 1편, 육의사창의록서(六義士倡義錄序) 2편, 창의록후서(倡義錄後序), 찬 4편, 가사만록(家史漫錄)·부절구(附絶句), 척록(摭錄) 10조, 사우록(師友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농촌풍경의 신선함을 읊은 것이다. 삶을 찬미하고 고락에 따라 그 속에서 재미를 찾으면 누구나 그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고 노래하였다. 서의 「상이성호선생(上李星湖先生)」은 스승 이익(李瀷)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함을 자탄하며 당시 유생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적하였다.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교육방법을 연구하여 젊은 학도들의 진로를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답노대유수성별지(答盧大有守性別紙)」는 예(禮)에 대한 물음에 답변한 것으로, 개장(改葬)·산송(山訟)·굴총(掘塚) 등의 경우에 대해 고례를 참작하여 상세하게 해설하였다.

「수월암기(水月菴記)」는 서재의 이름을 수월암이라고 한 데 대한 기문이다. 「우상기(愚上記)」는 육촌 아우가 서재의 이름을 우산재라 한 데 대한 기문이다. 「묘제설(墓祭說)」은 묘제의 제도가 삼대(三代) 이전에는 없다가 진나라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으로, 그 변천과정을 설명하였다.

「소심재명(小心齋銘)」은 동지 박효갑(朴孝甲)에게 준 명이다. 「여이호경서(與李浩卿書)」에서는 선사의 덕원(德院) 배향을 추진할 때는 성균관에서 논의하여 결정함이 옳다고 사리의 정당성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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