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 )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근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유관순 관련 생활유적. 사적.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유관순 관련 생활유적. 사적.
개설

1972년 사적으로 지정된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생가, 봉화지)과 1986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추모각, 기념비, 만세 부르는 모습의 동상)가 함께 있다.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은 유관순의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 1만 5000평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역사적 변천과 현황

유관순열사의 69주기를 맞은 1989년 10월 12일 오전 11시 추모각에서 당시 천안군수 주관으로 충청남도지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위원장 김재홍(金在鴻), 독립기념관장 안춘생(安椿生), 이화여고 교장 심치선(沈致善), 각급 기관장, 군내유지,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생가 터(生家址) 진입로 개량과 봉화대(烽火臺)·등정로(登程路)·초혼묘(招魂墓) 봉안을 위한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1990년 4월 1일 강영훈(姜永勳) 국무총리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졌다. 독립기념관을 참관하는 사람들은 증가하는데, 유관순열사사당으로부터 1,500m밖에 안 되는 생가 터까지 진입로가 협소하여 많은 불편이 따르자, 천안시는 차량통행로 확장을 위해 총 3억 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완공을 보게 되었다.

또한 유관순이 3·1독립만세 당시 봉화로 거사신호를 알렸던 매봉의 봉화대까지 자연석으로 된 220계단으로 등정로를 단장하기 위한 기공식도 함께 하였다. 매년 3월 마지막 날에 봉화를 올려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고 있다.

유관순이 1920년 10월 12일 순국한 뒤, 그의 모교 이화학당의 주선으로 일본관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일제가 군용지 사용이라는 미명하에 파헤쳐 흔적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기념사업회는 순국 69년만에 초혼묘를 봉안하여 유관순의 영혼을 위로하고 고귀한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교육도장으로 삼고자 기공하여 사적으로 보존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기념사업회는 장학사업·체육대회개최 등의 사업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유관순의 올바른 전기(傳記)를 발간하고 이를 영문(英文)으로도 번역, 전세계에 알려 일제의 잔학무도한 야만성을 알리며 유관순의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게 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참고문헌

『전통과 시론』(1989.12)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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