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민칙(民則)이다. 아버지는 대감 유윤겸(柳允謙)이며, 어머니는 담양군인(潭陽郡人) 이씨(李氏)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아 오경(五經)과 소의(疏義)를 정독하였으며, 향공진사(鄕貢進士)를 거쳐 972년(광종 23) 9월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한 뒤 공문박사(功文博士)·광문교서랑(光文校書郎)·광문랑(光文郎)·국자주부(國子主簿)·사문박사(四門博士)를 역임하였다.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방헌의 시무책이 채택되어 어사 우사원외랑(御事右司員外郎)이 되고, 이어 사관수찬관 기거사인 지제고 예부낭중(史館修撰官起居舍人知制誥禮部郎中)이 되었다.
995년(성종 14)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국자사업(國子司業)·예부시랑이 되었으며, 997년 8월 예부시랑으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를 뽑았다. 목종 초에는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서 왕이 사냥을 즐겨하는 것을 간하여 중지하게 하였다. 1000년 한림학사로서 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뽑았다.
비서감 중추사(秘書監中樞使)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1004년(목종7)에는 헌화대왕릉신도비문(獻和大王陵神道碑文)을 지어 판한림원사 좌산기상시 참지정사 감수국사 상주국 정의대부 하동현개국후 식읍삼백호(判翰林院事左散騎常侍參知政事監修國史上柱國正議大夫河東縣開國侯食邑三百戶)에 봉하여졌다.
1006년 내사시랑평장사 금자흥록대부(內史侍郎平章事金紫興祿大夫)에 임명된 후, 1009년(현종 즉위) 3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으며 그해 8월 세상을 떠났다. 같은 달에 시중, 1015년(현종 6) 내사령(內史令)에 각각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