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문중(文仲), 호는 포옹(浦翁). 아버지는 선전관 유신걸(柳信傑)이며, 어머니는 선천군수 김응하(金應河)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20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해남현감과 경흥부사, 숙천부사, 길주목사 등을 지냈다. 1664년(현종 5) 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이듬해 전라우도수군절도사·충청도병마절도사·우포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669년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다음해 김석주(金錫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1672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복직되었다.
1675년(숙종 1)에 훈련대장을 지냈다. 1677년 경기도수군절도사로서 화개산성(華蓋山城)을 개축하였으며, 1680년 경신대출척 때 남인으로 몰려 파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