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십이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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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작품
조선 후기에 안서우(安瑞雨)가 지은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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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안서우(安瑞雨)가 지은 시조.
내용

조선 후기에 안서우(安瑞雨)가 지은 시조. 지방관료직에서 물러나 전라도 무주에 은거하면서 산수자연을 즐기는 심회를 읊은 것이다. 서장(序章) 1수에 이어 12수로 된 연시조로, 총 13수가 작자의 문집인 ≪양기재산고 兩棄齋散稿≫에 전한다.

서장에서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여 내가 내키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겠다는 다짐을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좌표를 확고하게 직설적으로 드러내었다. 2장은 글을 하자니 우환의 시작이 되고 공자와 맹자를 배우려니 이를 수 없는 듯하여 좋은 시절에 농포(農圃)나 되겠다고 하였고, 3장은 청산과 녹수가 무지(無知)하고 무심(無心)한 나와 같아 요산요수(樂山樂水)하겠다고 하였다.

4장은 손수 밭갈이하여 끼니를 때우고 낚시질하여 반찬을 장만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 땔나무를 하는 자신의 전원생활의 일과를, 5장은 맑은 바람, 밝은 달과 더불어 욕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자연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자신의 한가한 삶을 노래하였다. 6장은 인간의 벗을 아는 것이 슬프고 물외(物外)의 벗을 아는 것이 즐거운데, 이 슬프거나 줄거운 것이 자신의 분임을 읊었다.

7장은 높은 산에 일어나는 흰 구름과 강물 위에 날고 있는 흰 갈매기를 벗으로 삼아 산수자연을 즐기는 삶을, 8장은 정(情)이 있으나 무심한 인간세상의 친구들과, 무심해 보이나 정이 깊은 강호의 갈매기나 백로를 대비하면서 옛날의 생각이 틀리고 지금의 생각이 옳음을 이제야 깨닫게 됨을 노래하였다.

9장은 도팽택(陶彭澤)이 관직을 버리고 갈 때와 태부(太傅)가 죽을 때의 호연(浩然)한 행색을 모두 부러워하면서도 멈춤을 알지 못하니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다. 10장은 가난하여 벼슬한다는 위빈이사(爲貧而仕)는 거짓이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몸을 굽힌 위친이굴(爲親而屈)이 옳다고 하면서 이제 지극히 부모를 봉양하러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11장은 풍파 많은 인간세계를 벗어나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삶을 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흥겨움을 읊었다.

12장에서는 자연 속에 은거하는 삶이 귀먹고 눈먼 데다 벙어리 노릇까지 해야 하는 견딜 수 없는 심정임을 노래하고 있어, 작자의 강렬한 사회의식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서두와 마무리를 사회의식 쪽에 두고 있음은 그의 자연 귀의의 의식이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한다.

참고문헌

『兩棄齋散稿』
집필자
심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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