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영암군수, 오위도총부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응시(應時)
이칭
완원군(完原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4년(명종 19)
사망 연도
1615년(광해군 7)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영암군수|오위도총부 부총관
관련 사건
임진왜란
목차
정의
조선시대 영암군수, 오위도총부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시(應時). 무과를 거쳐 관직에 나아갔으며, 1599년(선조 32) 5월 고성군수로 재직 중 사헌부로부터 지방관으로서의 자질이 없으니 파직하라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 뒤 1604년 6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시종, 수가(隨駕)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고 완원군(完原君)으로 봉하여졌다. 같은 해 10월 평안도우후(平安道虞候)에 임명되었으나 맡은 바 직책을 수행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노비를 탈취하는 등의 불법을 행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또다시 파직되었다.

1606년 3월 영암군수로 다시 외보(外補)되었으나, 이듬해 사간원으로부터 전정(田政)의 폐단과 관련하여 탄핵되기도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6월 임진왜란 당시의 공로를 다시 인정받게 되었고, 이후 관직은 오위도총부의 부총관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집필자
남인국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