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연여(淵如), 호는 고당(顧堂). 아버지는 진사 윤인보(尹麟普)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헌순(金獻淳)의 딸이다. 김학성(金學性)에게 수학하였다.
18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886년에 승정원주서가 되고 다음 해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1888년 5월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승자되어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1889년에 부사과 겸 선전관·동학교수(東學敎授)·사간원헌납, 1890년 사간원정언·춘추관기주관 등을 지냈다.
그 뒤 1892년에 성균관사성이 되고 2월에 남학교수를 겸하였으며, 입시하라는 왕의 명을 받들고 경사를 진강하였다. 그 해 11월에 사복시정이 되고 다시 응교가 되었다. 1894년에 부사과에 특제되고 일본참무관(日本參務官)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6월에 왜병이 범궐(犯闕)하여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파천하였을 때 정승 김병시(金炳始)에게 대가(大駕)의 환어와 진무(鎭撫)·방어의 난국수습책을 제안하였고, 그 해 7월에 나라의 형세가 어지럽게 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어도 나가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다가 1901년에 최익현(崔益鉉)을 사사한 이후로 성학(聖學)의 대도를 배워 학업에 더욱 정진하였다. 저서로는 『고당집(顧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