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정경(定卿),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우수운판관(右水運判官) 윤응상(尹應商)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교하현감(交河縣監) 이원우(李元友)의 딸이다. 박세당(朴世堂)은 그의 외손자이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91년 명경과(明經科)에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추천되었으나 실무자들이 성혼(成渾)·이이(李珥)의 당(黨)이라고 하여 임명되지 못하였다. 그 후 공조정랑(工曹正郞)·호조정랑(戶曹正郞)을 거쳐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또한 천추사(千秋使)로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고, 울산판관(蔚山判官)으로 나가서는 임진왜란에 당하였던 전화(戰禍)를 복구하니, 그 고을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주었다. 윤안국은 마음 가짐이 개결하여 권문에는 출입하지 아니하였으며, 화복(禍福)에 연연하지 않고, 이이첨(李爾瞻)·기자헌(奇自獻) 등과는 절교하였다. 시(詩)에도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설초유고(雪樵遺稿)』 1책이 있다. 윤안국은 인조반정 이후 판결사, 예조참의, 동부승지, 좌부승지, 강원도관찰사, 병조참의, 상주목사를 거쳐 형조참의에 이르렀으며, 1629년 명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익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