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대여(代餘). 아버지는 부윤 윤진경(尹進卿)이며, 어머니는 부호군 김성진(金騂振)의 딸이다.
1644년(인조 2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654년(효종 5) 마병별장(馬兵別將)으로서 군사를 사열할 때, 부하들이 왕 앞에서 금위영의 군사와 다툰 일로 책임을 지고 투옥되었다. 그 뒤 정상이 참작되어 용서되고, 1657년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오르게 되었다.
1662년(현종 3) 어영중군을 역임하였고, 다음해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69년 충청도병마절도사를 다시 역임하였다. 1672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외방에 머무르면서 지방의 군무를 담당하였다. 그 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도총관·훈련대장 등을 역임하고, 1679년(숙종 5) 중군(中軍)이 되었다.
이듬해 외직으로 나아가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무에 충실을 다하였다. 한편, 동지중추부사로 재직할 때는 대흥산성(大興山城)을 증축하고, 도정으로 있을 때는 강화도의 돈대(墩臺) 공사를 총감독한 공으로 그 노고가 인정되어 가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