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관은 음악에 쓰이는 율, 즉 기본이 되는 음을 불어서 낼 수 있는 댓가지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한 옥타브를 황종·대려 등 12반음으로 나누었다. 이를 12율이라고 한다. 율관의 수효는 기본적인 12율에 해당하는 12개가 있어야 한다. 12개의 율관을 만드는 방법은 12율의 기본음인 황종율관의 길이를 3등분한다. 그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를 빼거나 더하여 다른 11개 율관을 만들어 낸다. 세종 때 박연은 율관 제작을 시도하였다. 12율관이 구비되어야 율관의 음정에 맞추어 편경이나 편종 같은 악기를 제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한 옥타브를 황종 · 대려 · 태주 · 협종 · 고선 · 중려 · 유빈 · 임종 · 이칙 · 남려 · 무역 · 응종의 12반음(半音)으로 나누어서 음악활동을 하였는데, 이 12반음들을 12율려(律呂), 또는 줄여서 12율이라고 한다.
따라서 율관의 수효도 이 기본적인 12율에 해당하는 12개가 있어야 하였다. 12개의 율관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주로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을 썼다.
이 삼분손익법은 말뜻 그대로 12율의 기본음인 황종음을 내는 황종율관의 길이를 3등분하고 그 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를 빼거나[損] 더하여[益] 여타의 11개 율관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예로 황종율관의 길이는 예외도 있지만 대개 고대사상에 입각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9의 숫자를 취택하여 9촌(寸)으로 정하여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황종율관의 길이인 9촌을 3분(分)하여 얻은 3촌을 본래의 황종관의 길이인 9촌에서 손일(損一), 즉 9촌의 3분의 1인 3촌을 빼면 6촌이 되며 바로 이 6촌 길이의 율관에서 나는 음은 황종에서 8번째의 높은 음인 임종에 해당되는 것이다.
다시 6촌 길이의 임종율관을 3등분하고 이번에는 손일이 아닌 익일(益一), 즉 3분의 1에 해당하는 2촌을 임종관의 길이인 6촌에다 더하면 8촌이 되는데, 이때의 음높이는 임종보다 6반음이 낮은 태주가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원리로 삼분손일과 삼분익일을 거듭하여가면 결국 한 옥타브내의 12반음에 해당되는 12율관을 모두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황종율관은 모든 율관제작의 모체가 될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도량형의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아도 왕조가 바뀌거나 기타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면 정확한 황종율관의 제작에 관심을 쏟는 것이 상례였다. 황종율관이 도량형의 준거가 된다는 말은 곧 황종율관의 길이와 부피와 무게가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의 원리적인 측면만을 옛 문헌에서 살펴보면 우선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서처럼 도(度), 즉 길이에 있어서는 90알의 기장[秬黍]을 일렬로 늘어놓아 척도의 기준을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90알의 기장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황종율관의 길이와 일치하는데, 이 때 기장 한 알의 폭을 1푼[分]이라고 하고 10푼을 1촌, 10촌을 1척(尺), 10척을 1장(丈), 10장을 1인(引)이라고 하는 예가 곧 그것이다.
한편, 부피에 있어서는 황종율관에 가득차는 기장 1,200알의 부피를 1약(龠)이라 하고 10약을 1홉[合], 10홉을 1되(升], 10되를 1말[斗], 10말을 1짝[斛]이라고 한다. 또한, 무게에 있어서는 위의 1, 200알의 기장의 무게를 12수(銖)라 하고 24수를 1냥(兩), 16냥을 1근(斤), 30근을 1균(釣), 4균을 1석(石)으로 하고 있다.
기장알을 쌓아서 황종척(黃鐘尺)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에는 거서(秬黍)의 길이가 긴 쪽끼리 세로로 쌓는 종서척(縱黍尺)과 길이가 짧은 쪽끼리 가로로 연이어 쌓는 횡서척(橫黍尺)이 있는데 이들 양자의 길이는 결과적으로 같다.
종서척은 9진법의 9분척(分尺)으로서 9촌이 1척이고 기장알 81개에 해당하는 81분(分)으로 이루어졌으며, 횡서척은 10진법에 의한 10분척으로 10촌이 1척이고 기장알 100개를 가로로 늘어놓은 100분의 길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서』에 소개된 황종척에 의한 도량형의 설명은 종서척인 9분척에 의한 황종척의 길이와 횡서척에 근거한 10진법의 단위개념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혼동은 후대에도 흔히 나타나는 황종척의 율장(律長)에 관한 사례들이다.
문제는 이들 구체적인 황종척의 길이를 산출하여 내는 방법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여기에서 재삼 확인할 일은 어떠한 방법에 의해 제작되었건, 결국 음의 높이를 가늠하는 황종율관이 일상생활의 필수여건인 도량형의 기준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황종율관은 도량형의 기준이 되는가 하면 12율의 기본이 되어 실제 음악의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간 중요하지가 않다.
황종율관의 길이, 바꿔 말해서 황종음의 높이가 달라진다는 것은 곧 음악의 내용은 물론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도량형의 기틀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곧 인간생활 자체의 규범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자못 중대한 의미가 있기도 한 것이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2, 3차에 걸쳐서 율관제작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정확한 황종율관에 의한 12율관이 구비되어야만 율관의 음정에 맞추어 편경(編磬)이나 편종(編鐘) 같은 중요한 악기를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연이 1차로 시도한 황종율관의 제작은 옛 법도에 따라서 기장알, 즉 해주에서 나는 거서 90알의 길이를 측정하고 그 길이에 맞도록 대를 잘라서 황종율관을 만들었는데 실제의 음정은 중국의 황종보다 1율이 높았다.
1율이 높았던 이유는 해주산의 기장이 옛 중국의 그것보다 낟알이 작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90알을 이은 죽관의 길이가 짧아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 율관제작 때는 아예 중국제 경(磬)의 황종음에 맞추어서 황종율관을 마련하고 그 율관의 길이와 90개의 낟알의 길이가 부합되게끔 기장 대신 밀[蠟]로 낟알을 빚어서 조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나무로 만든 죽관은 기후관계에 따라서 미세한 음정의 오차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구리로 황종율관을 만들어보기도 하였는데, 이 때의 동율관(銅律管)은 그 길이나 용적이 유난히 커서 역시 적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황종율관의 길이가 9촌이니까 적당한 댓가지를 소정의 길이만큼 잘라서 쉽게 황종율관을 만들면 될 것 같지만, 기실 이 때의 9촌이라고 하는 길이의 기준은 이미 기존하여 있는 자[尺]에 의한 고정된 척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장알 90개(종서척에 의한 실제의 개수로는 81개여야 함.)를 이어놓은 길이를 9촌이라고 불렀을 따름이다.
따라서, 황종율관의 길이가 9촌이라는 표현에서 그 9촌의 실제 길이는 기장알의 크기 여하에 따라서 가변적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중국산 기장알 90개의 길이로 된 중국의 황종율관과 해주산 기장알 90개의 길이로 만든 우리의 활종율관과는 적어도 정확한 황종율관을 추구하여 오던 고대음악관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는 으레 오차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다만 박연의 시대에는 우리의 황종율관을 중국의 그것에 인위적으로 맞추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