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마치 천랑(穿廊)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의 존재는 이 집의 특색이 된다. 사랑채의 상량대에 ‘대한 광무오년신축 이월초칠일 신시 상량(大韓光武五年辛丑二月初七日申時上樑)’이라는 묵서명(墨書銘)이 있다. 1901년에 완성된 집인데 안채도 같은 시기에 조영되었다고 보인다.
사랑채는 화계(花階: 꽃을 심기 위해 뜰 한쪽이 흙을 조금 높이 쌓은 곳)처럼 구조된 높은 축대 위에 첨계(詹階: 댓돌)를 설치하고 올려 세웠다. 칸반통의 여섯 칸 一자형인데 왼쪽 첫째 칸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다. 측면에 문짝이 달려 출입하게 되었다. 출입문간 다음이 부엌과 고방이다. 고방은 앞퇴 부분을 차지하였다. 다음은 사랑방 두 칸이다. 다음이 사분합 달린 마루방이고 다음이 방이다.
이들 앞쪽으로는 툇간이 열렸고 툇마루가 깔려 있다. 사랑채의 문을 들어서면 샛담이 가로막는다. 안채로 들어가려면 일각문을 이용하여야 한다. 일각문을 들어서면 안채 중앙에 구조되어 있는 천랑과 같은 것에 직면한다. 전단(前端)은 샛담에 연결되어 있는데 부엌이다. 부엌은 단칸통으로 두 칸이다. 다음 두 칸이 방이다. 다음이 단칸의 뒷방이다. 이 부분이 안채의 중앙칸이 된다. 좌우로 세 칸씩 벌려 있어 안채의 정면은 7칸이다.
측면은 칸반통인데 중앙 칸의 왼쪽 협간은 두 칸이 대청이고 다음이 단칸의 방이다. 이들 앞쪽으로 반 칸 퇴가 있다. 중앙칸 오른쪽도 대청이다. 한 칸 넓이이고 다음이 두 칸의 방이다.
역시 앞퇴가 설치되어 있다. 앞퇴의 평주나 고주의 주간에는 문짝을 달지 않고 모두를 개방하였다. 충북지방에도 대청에 사분합을 달아 폐쇄시키는 유형의 집이 있고 이 집에서도 사랑채에서는 그런 폐쇄시설을 하였으면서도 안채에서는 채택하지 않고 활짝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안채와 사랑채도 다 홑처마이다. 지붕은 두 채 다 팔작기와지붕이다. 천랑형의 부엌 뒤편에 덧달아낸 반 칸 시설이 있고 그 동쪽에 장독대가 있다. 주변에 부엌의 세간들이 흩어져 있다. 그밖에 부속건물들이 있다. 이런 배열형은 아주 보기 드문 것으로 이 집의 특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