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경대 ()

근대사
단체
1930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창립된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의 경찰기구.
정의
1930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창립된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의 경찰기구.
설립목적

1930년 5월 5일 대한교민단의 제8회 의사회(議事會)에서 결정된 「의경대조례(義警隊條例)」에 의거해 교민단의 경호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연원 및 변천

본부 소재지는 상해 노반로 성성리(魯班路星星里) 2호였다. 초대 대장에는 백정선(白貞善)이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당시 교민단장이었던 임시정부의 재무부장 김구(金九)는 1931년 이 의경대를 동원하여 북경으로 여행할 예정이었던 만철총재(滿鐵摠裁) 우치다(內田)를 폭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계획은 우치다의 여행 취소로 좌절되고 말았다. 김구는 이 일이 있은 뒤 1931년 10월 의경대를 개편하여 김창국(金昌國)을 제2대 의경대장에 임명하였다. 김창국이 대장을 맡고 있는 동안 별다른 활동은 없었다.

그러다가 1932년 8월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의 대장으로 활약하던 박창세(朴昌世)가 의경대장에 새로이 임명되면서 의경대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다. 즉, 소극적인 교민단의 경호 활동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밀정처단 활동에 나선 것이다.

1933년 8월 대원 이운환(李雲煥)·이경산(李景山)은 대장 박창세의 명에 따라 석현구(石鉉九)·유인발(柳寅發)을 일본 관헌의 주구로 지목하여 사살하였다. 이경산은 광둥(廣東)으로 도피하였다가 붙잡혔고, 이운환은 박창세와 함께 전장(鎭江)으로 도피하여 은신하였다.

박창세·이운환 등은 전장에서도 김완태(金完泰)를 일본 관헌의 밀정으로 지목하여 사살하였다. 이 사건들은 박창세가 병인의용대의 대장이면서 동시에 의경대의 대장이었기 때문에 병인의용대가 일으킨 사건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사(大韓民國臨時政府史)』(이현희, 집문당, 1982)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 2·3(국사편찬위원회, 1972·1973)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김정명, 原書房, 1967)
『朝鮮民族運動年鑑』(上海 日本領事館)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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