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춘세(春世), 호는 난곡(蘭谷). 이상안(李象晏)의 아들이다. 종숙부 이상기(李象夔)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경전을 비롯한 여러 서적을 배웠는데, 어려서는 특히 「수호전(水滸傳)」을 좋아하였다.
성장하면서 정명도(程明道)와 왕양명(王陽明)의 책을 독신하였다. 작은아버지의 후사(後嗣)로 간 지 얼마 안되어 생부 또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으로 양가의 홀어머니를 모시느라 과거볼 겨를이 없었으므로, 1885년(고종 22)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곧 돌아왔다.
이 때 조정에서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종형 이건창(李建昌)이 자기와 같이 활동할 것을 권하였으나, 늙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1894년 이후에는 가족을 이끌고 서울에 돌아와 「원사(原士)」를 지어 산림(山林)에 남아 있는 선비를 기롱하고, 학문을 새롭게 하고자 다짐하였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난곡존고(蘭谷存藁)』 1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