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정(子靜). 아버지는 이인문(李仁文)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병조좌랑·헌납을 지냈으며,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윤은보(尹殷輔)와 함께 장(杖) 70의 처벌을 받았다.
1506년(중종 1) 9월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고 연성군(延城君)으로 봉하여졌다. 1511년 첨지중추부사로 관압사(管押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밀양부사로 외보(外補)되었다.
이 때 사헌부·사간원으로부터 밀양과 같은 큰 읍을 다스림에 부적합한 인물로 체직(遞職)을 청하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19년 대사헌 조광조(趙光祖), 대사간 이성동(李成童) 등의 정국공신에 대한 삭훈 조치로, 같은해 11월 삭록되었다. 기묘사화 이후 다시 철원부사·여주목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24년 2월 가노(家奴)에 의하여 독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