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천(仁川).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원굉(李元紘)이다.
1393년(태조 2)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고, 1401년(태종 1) 지양주사(知襄州事)가 되었다.
1408년 종부시 영(宗簿寺令)으로 재직하면서, 충청도경차관(忠淸道敬差官)으로 나가 도망간 군인들을 추쇄(推刷)하였다. 이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대언(代言)을 지내고, 1413년 지신사(知申事)를 지냈으나 이듬해 파직되고, 의금부에서 국문을 당하였다.
1417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이듬해 도량형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규찰하지 않았다 하여 또 파직되었다. 곧 함길도도관찰사를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세종이 즉위한 직후 상왕 태종을 국무에서 배제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처형된 강상인(姜尙仁)의 옥사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