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상보(相甫). 이서(李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태(李惟泰)이다. 아버지는 이옹(李顒)이며, 어머니는 정언 윤문거(尹文擧)의 딸이다. 정산(定山)에 살았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사간에 이르렀다. 1709년(숙종 35)에 설서(說書), 이어 정언에 올랐다. 1717년(숙종 43) 함평현감 때에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고 해서 전라우도암행어사 조영복(趙榮福)에 의해 파직되었다.
1724년(경종 4)에 장령이 되었으나 다시 파직되었다. 1725년(영조 1) 필선·헌납이 되었다가, 사간·집의에 임명되었다. 1726년(영조 2)에 다시 사간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승지가 제수되었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 때에 영부사 민진원(閔鎭遠) 등 101인과 함께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