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명숙(明叔), 호는 운포(雲圃). 남원부사 이의형(李義亨)의 현손으로, 증조는 생원 이후(李詡)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령(李千齡)이고, 아버지는 이세렴(李世廉)이다. 어머니는 완산최씨(完山崔氏) 최운걸(崔云傑)의 딸이다. 이황(李滉)에게 배웠으나 무예도 뛰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최강(崔堈) 등과 포위된 진주성 방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워 훈련원정에 특임되었다.
곧이어 권무과(勸武科)에 급제하고, 1614년(광해군 6) 양산군수로 재임 중 선전관에 임명되어 상경하던 도중, 폐모론의 소식을 듣고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음을 핑계삼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해 가을 삼도통제우후(三道統制虞侯)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15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