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아버지는 탐라도에서 여러 대를 살아오며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을 지낸 이광빈(李光彬)이다.
1784년(정조 8)에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선전관·충장장(忠壯將)·오위장·전주중군(全州中軍) 등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충장장으로 있을 때인 1796년 9월 제주 앞바다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 중국의 푸젠성[福建省] 펑후도[澎湖島]에 표착하여 타이완[臺灣]·샤먼[廈門]·저장[浙江]·강남[江南]·산둥[山東]·베이징[北京]·랴오양[遼陽]·의주(義州)를 거쳐 이듬해 윤6월 20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정조를 만나고, 국문으로 「표해가(漂海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