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이불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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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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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
내용

이불란사(伊弗蘭寺)는 4세기 후반에 건립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372년(소수림왕 2)에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하였다. 또한 374년(소수림왕 4)에 아도(阿道)가 진(晉) 나라에서 왔으므로 이듬해에 초문사(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무르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머무르게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불란사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고 공인되면서 초문사와 함께 처음으로 건립된 사찰이다.

소수림왕 시기에 고구려가 전진을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던 배경에는 고구려와 전진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작용하였다. 즉 370년(고국원왕 40)에 전진에 의해 연이 멸망하자 전연(前燕)의 모용평(慕容評)이 고구려에 망명하였는데, 고국원왕은 그를 잡아서 전진으로 보냈고, 이로써 양국은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진의 왕 부견은 불교를 매우 숭상하였으므로 고구려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전하였다. 부견은 379년(소수림왕 9)에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도안(道安)을 자신의 측근에 두고 국정을 보좌하도록 하였고, 쿠챠에 원정군을 보내 구마라집(鳩摩羅什)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도안과 구마라집은 초기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전진을 비롯한 이른바 5호16국(五胡十六國)은 북방유목민 왕조로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369년(고국원왕 39)에 백제군에 패배하였고, 371년(고국원왕 41)에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하자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이러한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 소수림왕이 즉위하여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공포하였다. 따라서 소수림왕 시기의 불교 수용과 공인은 고구려의 대내외적인 상황 속에서 국가체제 정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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