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고종 21)∼1948. 황해도 재령출생. 12세에 상경하여 정동에 있는 피어슨 성경학교에 입학하고 신교육을 받는 한편 풍금을 배웠다. 15세에 다시 평양으로 내려가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몇 년 후 다시 상경하여 중앙·보성·휘문고등보통학교, 숙명·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24세의 나이로 1910년에 창설된 조양구락부 조선악과에 입학하여 한국가곡을 전공하는 한편, 김인식(金仁湜)으로부터 서양음악의 이론을 닦아 우리 전래의 음악을 5선지 위에 채보하기 시작하였다.
1929년에 내놓은 「놀령」·「방아타령」 외 16곡을 수록한 『조선속곡집(朝鮮俗曲集)』을 출간하고, 가곡·시조를 비롯하여 30여종을 수록한 『신선속곡집(新選俗曲集)』을 1921년 5월 출간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 전통음악을 서양식 악보로 내놓은 것이다.
교편을 잡았던 시기인 15세 때 교재 빈곤을 통감하고 『풍금연습 중등창가집』·『보통악전대요(普通樂典大要)』·『나팔곡집』·『악리부중학창가집(樂理附中學唱歌集)』을 발간하였으며, 그밖에 신구잡가(新舊雜歌) 여러 편을 펴내기도 하였다.
이 당시 음악서적이란 1910년에 나온『보통교육창가집』과 1920년경까지의 찬송가를 제외하고는 그의 저서 외에 별로 없었다. 이밖에도 『신유행창가집』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