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영석(李永錫),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진위(振威)출신.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이정관(李鼎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종주(李宗周)이다. 아버지는 이경관(李敬寬)이며, 어머니는 서종벽(徐宗璧)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을 거쳐 고양군수로 재임중인 1807년(순조 7)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1818년 성균관대사성, 1820년 대사간을 거쳐 1821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단양군의 전세(田稅)·대동미(大同米)·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1825년 형조판서에 임명된 이래 이조·공조·예조 등의 판서, 의정부 좌·우참찬, 좌부빈객,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1833년 파직당하였다. 품계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고,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