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계통(季通), 호는 동병(東屛). 예안 출신.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수경(李守經)이며, 어머니는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주서를 거쳐 1747년 지평을 지냈다. 주서로 있을 때 청명(淸名)을 날렸다. 1754년 정언이 되고 장령을 거쳐 뒤에 판결사가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어사 채제공(蔡濟恭)이 왕에게 아뢰기를, “이세태는 3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월봉을 저축하여 민역(民役)을 보충하고 궁핍함을 다스렸으므로 이민(吏民)이 깊이 신뢰하고 있다.”고 하였다. 왕이 형조참의를 제수하였으나, 이 때는 이미 이세태가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 조정이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