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맹윤(孟潤)
조은(釣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6년(숙종 42)
사망 연도
1777년(정조 1)
본관
진성(眞城)
출생지
예안
주요 관직
우부승지|대사간|대사헌
관련 사건
신임사화
정의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맹윤(孟潤), 호는 조은(釣隱). 예안 출신. 이황(李滉)의 8대손이며, 이영철(李英哲)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경(李檠)이고, 아버지는 감역 이수항(李守恒)이며, 어머니는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0년(영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 뒤, 1753년(영조 29) 정시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검열·교리를 거쳐 1762년에 우부승지에 오르고 그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대사간을 제수받았을 때, 신임사화의 죄인인 이광사(李匡師)를 정계(停啓)하지 않았다 하여 유배되었었다.

도승지 홍명한(洪名漢), 병조판서 이지억(李之億) 등이 임금의 뜻에 따라 정계에 응할 것을 권하였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 이에 채제공(蔡濟恭)이 서찰을 내어 이세택이 정계에 응하지 않았음을 칭찬하였다 한다.

1768년 인동부사로 있을 적에 살옥(殺獄)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였다고 탄핵을 받고 단양에 유배되었는데, 이 때부터 시파(時派)로서 벽파(僻派)의 탄압을 받았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자, 대사헌이 되어 벽파 정후겸(鄭厚謙) 등을 규탄하여 죄상을 밝혔다. 이어 『명의록』을 편찬할 때에 찬집당상이 되었다. 시문집으로 『조은유고(釣隱遺稿)』가 전한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조은유고(釣隱遺稿)』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집필자
전형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