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공(幼公), 호는 신재(信齋).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후손으로, 양명학자이며 서예가로 유명한 이광사(李匡師)의 아들이며, 『연려실기술』의 저자인 이긍익(李肯翊)의 아우이다. 아버지에게서 가학(家學)으로 학문을 전수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이룩한 정제두(鄭齊斗)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이영익의 집안은 학문과 벼슬이 계속된 가문이었으나 여러 대에 걸쳐 당색이 소론에 속하여 있었으므로 노소당쟁에 휘말려 할아버지 이진검(李眞儉)과 아버지 등이 유배되어 죽는 등 연속적으로 수난을 당하였다.
따라서, 이역익은 일찍이 벼슬을 단념하고 오직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시와 음악 및 서화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또한 재종제 이충익(李忠翊)과 서찰을 주고받으며 경학(經學)에 관하여 양명학적 관점에서 토론을 벌였고, 정동유(鄭東兪)·신대우(申大雨)·유혼(柳混) 등과도 교유하였다. 저서로 『신재집(信齋集)』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