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

이영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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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인물
해방 이후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 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 등을 역임한 의료인. 의사, 사회사업가.
이칭
쌍천(雙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80년
본관
평창(平昌)
정의
해방 이후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 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 등을 역임한 의료인. 의사, 사회사업가.
개설

본관은 평창(平昌). 호는 쌍천(雙泉). 평안남도 용강군 지성면에서 이종현(李宗鉉)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모교에서 병리학을 연구, 1935년 일본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바로 전라북도 군산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구마모토농장[熊本農場] 의무실 진료소장으로 부임하였다.

그의 평생사업은 의사로서의 진료사업과 사회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8년 농촌위생연구소를 처음 설립하고, 후에 다른 부설 진료기관과 합병하여 재단법인 한국농촌위생원을 창설하는 등 농촌사회 및 농민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여 그 동안 47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 기관학술잡지로서 『농촌위생(農村衛生)』을 발행하였다.

진료사업으로는 1945년 개정중앙병원을 개설하여 여러 곳에 산하 진료소 및 치과진료소를 두었다. 1948년에는 정읍군에 화호중앙병원을 설치하였고, 1961년에는 개정뇌병원을 개설하여 지역농민들에게 많은 의료혜택을 주었다.

또, 그는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교육과 보건요원확보의 필요성에 따라 1951년에 개정간호학교, 1952년에 화호여자중학교, 1961년에 화호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농촌보건요원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보건사회부의 위촉을 받아 보건간호원·양호교사·결핵관리요원·가족계획사업요원의 단기수련사업도 실시하였다. 1957년에 농촌위생원 구내에 일심영아원(一心嬰兒院)을, 1965년에 군산에 일맥영아원(一麥嬰兒院)을 설립하여 농어촌에서 버림받고 의지할 곳이 없는 영아들을 양육하였다.

그는 공직으로서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대한의학협회 대의원·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전북대학교 평의원·대한공중보건협회장·대한기생충학회장·대한기생충박멸협회장·대한가족계획협회 이사·보건사회부기생충대책 전문위원·국제로터리클럽 377지구 총재 등을 역임하였고, 제6회 국제열대의학회에 참석하여 분과 의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그 동안의 공적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대한적십자사 봉사장, 1975년 연세대학교로부터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가 죽은 다음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고이영춘선생」(소진탁, 『일간세브란스』 187호, 연세대학교의과대학, 1981)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소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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