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

근대사
인물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이복형으로, 민씨정권의 세도정치에 불만을 품었던 남인계열의 인물들에 의해 추대될 예정이었으나 검거되어 사사된 왕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881년(고종 18)
관련 사건
이재선 모역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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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이복형으로, 민씨정권의 세도정치에 불만을 품었던 남인계열의 인물들에 의해 추대될 예정이었으나 검거되어 사사된 왕족.
개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서장자(庶長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1년에 전부사(前府使)로서 조(租) 500석을 교동(喬桐)에 보내 진구(賑救)토록 하였다. 1879년에 별군직(別軍職)으로서 가자되었으나 이듬해 소위 이재선 추대 대역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안기영(安驥泳)과 권정호(權鼎鎬)는 모두 남인계열의 인물로 흥선대원군 몰락이후 민씨정권의 세도와 개화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위정척사운동이 일어나자 그들과 은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흥선대원군의 재기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수령(首領)으로 이재선을 정하고 영남유소(嶺南儒疏)의 간부급인 강달선(姜達善)과 강화선비인 이철구(李哲九), 이서출신(吏胥出身) 이두영(李斗榮)과 이종학(李鐘學) 등과 결탁한 다음 표면적으로는 당시의 척왜기세를 이용하여 거의토왜(擧義討倭)를 내세우고 이면에는 이재선을 추대하여 폐립의 반역음모까지 추진하였다.

그러나 거사에 따른 재원조달과 무기구입, 거사방법 등에서 별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광주장교(廣州將校) 이풍래(李豊來)의 고변(告變)으로 사전에 발각되어 연루자 3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재선은 자진해서 심문에 응했고 처음에는 제주도에 귀양으로 정해졌으나, 유림의 만인상소에 밀려 고종은 사약을 내렸다, 1906년에 사면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한국사: 최근세편』 (이병도, 을유문화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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