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문(子文), 호는 안곡(安谷). 아버지는 참봉 이사금(李師金)이다.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67년(현종 8) 5월 진사로 상소하여 임진왜란 당시 도움을 준 명나라 신종(神宗)·의종(毅宗)의 사우건립과 양호(楊鎬)와 이여송(李如松)의 배향을 주장하였다. 그의 신종 사우의 설치주장은 후일 1704년(숙종 30) 창덕궁 금원(禁苑)에 설치된 대보단(大報壇) 창설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이 후 서리(胥吏)의 폐단과 시폐에 대한 상소를 하기도 하였으며, 1671년(현종 12) 광흥창봉사에 제수되었다. 1806년(순조 6) 천안의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