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숙발(叔發), 호는 백천(白川).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형 이천배(李天培)와 함께 정구(鄭逑)를 사사하였으며, 1620년(광해군 12) 한강 정구가 죽자 그의 원묘(院廟: 신주를 모시고 제향하는 사당)를 짓고 신도비의 건립과 문집간행에 노력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그 공으로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성주 덕암사(德巖祠)에 향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