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덕린(德隣), 호는 동천(東川). 아버지는 이원량(李元良)이며, 어머니는 함창김씨(咸昌金氏)로 김인손(金寅孫)의 딸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60년 성환찰방, 1566년에 남해현감, 그 뒤 기장현감을 거쳐 전적이 되고, 이어 경상도사·형조좌랑·문천군수·영서찰방(迎曙察訪)·장단도호부사·봉상시정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아들과 함께 금산에 있는 조헌(趙憲)의 의진으로 가던 중 적군을 만나자 백병전으로 많은 적을 사살하였고, 그 뒤 쌍봉에서 모병하여 황간에 진을 치고 관군과 합세하여 수많은 적군을 격파하여 수훈(首勳)의 공을 세웠다.
후에 군자정책(軍資正策) 선무2등공신(宣武二等功臣)으로 녹훈되었다. 죽은 뒤에 예조참의가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동천유고(東川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