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여행자의 숙박시설로 영남로(嶺南路)로 향하는 첫번째 원이었다. 원래 위치는 현재의 한강로 2가 부근으로 이태원동보다는 서쪽에 있었다. 현재의 이태원동은 이태원에서 유래하였으며, 명칭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전한다.
조선 초기에는 ‘李泰院(이태원)’으로 한문표기가 달랐는데, 산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 도성 안의 부녀자들이 빨래터로 이용하였고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아군에 항복하고 우리 나라에 귀화한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다 하여 이타인(異他人)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왜군들과의 혼혈들이 거주한 곳이라 하여 이태원(異胎院)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그 뒤 효종 때 이곳에 배나무가 많다 하여 지금의 이태원으로 바뀌었다.
이태원이 있던 지역에는 광복 이후 급증한 서울인구의 집단거주지역으로 바뀌어 문화촌·해방촌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주변의 미8군 주둔지역과 연계한 이태원상가가 새로운 상업문화를 형성하여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