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선공감감역, 장원서주부, 이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미(子美)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3년(선조 36)
사망 연도
1681년(숙종 7)
본관
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주요 관직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장원서주부(掌苑署主簿)|이천부사
관련 사건
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선공감감역, 장원서주부, 이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미(子美). 아버지는 판서 이현영(李顯英)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는 근세의 명재상이라는 칭함을 받았다. 이러한 가정분위기에서 학문에 열중하다가 1633년(인조 11) 천거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다.

병자호란 이듬해인 1637년 재상의 자제를 볼모로 보내야 한다는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이조판서의 아들로서 심양(瀋陽)으로 끌려갔다가 7년 만에 돌아왔다.

1645년 장원서주부(掌苑署主簿)가 되고, 1664년(현종 5) 이천부사를 비롯하여 영천군수 등 여러 고을을 다스리고, 노인직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된 뒤 용산(龍山) 강사(江舍)에 물러나 풍류를 즐기며 강백년(姜栢年) 등과 교유하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남계집(南溪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