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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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도
일기예보도
과학기술
개념
일기도와 기상 관측 기기를 이용하여 분석한 기상상태에 대한 예보. 점후법 · 점우법.
이칭
이칭
점후법(占候法), 점우법(占雨法)
정의
일기도와 기상 관측 기기를 이용하여 분석한 기상상태에 대한 예보. 점후법 · 점우법.
개설

옛날에는 해와 달·별·바람·구름 등의 상태나 변화, 또는 여러 가지 생물의 특이한 활동 등을 보고 앞으로 다가올 일기의 변화를 예측하는 이른바 관천망기(觀天望氣)를 하여왔다. 이것을 점후법(占候法)·농가점후법 또는 점우법(占雨法)이라 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기압·기온·바람·구름 등의 기상요소들을 측기(測器:측량 및 기상 관측에 쓰이는 기기)로 재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과학적으로 일기 예측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기예보를 위하여 기상레이더·슈퍼컴퓨터·기상위성 등 첨단과학 기기들을 활용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영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점성술사나 마술사들이 일기 예측을 한 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더 오랜 옛날부터 관찰과 경험에 의한 일기 예측을 하여왔다. 처음에는 주술(呪術)로 시작되었으나 점차로 점후법, 즉 관천망기로 발전되었다.

『삼국유사』에 “환웅(桓雄)이 3,000명의 무리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을 주관하고 세상을 다스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바람·비·구름은 일기의 변화와 직결되므로, 이것을 관장한다는 것은 비록 주술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기 예측을 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상현상이나 생물현상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여 『삼국사기』·『삼국유사』·『증보문헌비고』 등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인 것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세심한 관찰이 관천망기를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관천망기는 그날 또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단기예보를 위한 것이지만, 상당히 긴 기간의 장기예보를 위한 것도 있다.

백제 기루왕 40년(116) 6월에 “큰 비가 열흘이나 내렸다. 한강의 물이 넘쳐 민가가 떠내려가고 허물어졌다(大雨浹旬漢江水漲漂毁民屋)”라 하였고, 이어 “이에 앞서 황새가 도성문에 보금자리를 만든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마땅히 수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先是有鶴巢于都門人以爲當有水害果驗)”라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 흘해이사금 41년(350) 4월에 “큰 비가 열흘 동안이나 내렸다. 평지에 물이 서너 자나 되었고, 관청과 민가가 물에 잠기고 떠내려갔다(大雨浹旬平地水三四尺漂沒官私屋舍)”라는 기록과 함께 “이에 앞서 월성의 모퉁이에 황새의 보금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장차 큰물이 날 징조라고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과연 들어맞았다(先是有鶴巢于月城隅人謂將水之兆至是果驗)”라고 기록하였다.

황새가 월성의 한 모퉁이에 집을 지은 것이 3월이고, 4월에 큰 비가 내렸다고 하였으니, 4월의 큰 비를 3월에 예측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천망기에 의한 일기예측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되며 행하여졌다.

1854년 11월 크리미아전쟁 때 지중해에서 작전 중이던 프랑스 군함이 갑자기 내습한 폭풍우 때문에 침몰한 해난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원인을 조사한 것이 근대 일기예보 발달의 동기가 되었다. 즉, 여러 곳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하여 관측 결과를 전보로 신속히 모아 일기도를 만들고 분석하여 폭풍우 같은 현상을 예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441년(세종 23)에 발명한 측우기로 우량의 정량적 측정을 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이때부터 근대 기상업무가 시작된 것이지만, 관상감의 일기예보는 역시 관천망기에 의존하고 있다.

서구식 기상관측은 우리나라 정부가 고용한 독일인 묄렌도르프(Mollendorff, P. G.)가 1883년(고종 20) 6월에 원산과 인천에 관측소를 설치한 것이 최초이고, 1898년 1월에는 러시아 정부가 인천에 측후소를 설치하여 기상관측과 기상신호를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일기예보를 신호기로 일반에게 알리게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1884년부터는 일본도 부산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하였고, 1910년 일제강점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기상업무는 모두 일본인들이 관장하게 됨에 따라 일기예보도 일본인들이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모든 기상업무가 이관되어,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근대적인 일기예보를 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현황

현재 기상청과 공군기상단 그리고 여러 대학의 대기과학과(또는 대기과학 관련학과)에서는 최신 기상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각종 일기도 분석에 전자계산기를 활용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의 도입으로 수치예보에 의한 일기예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기상레이더의 에코(echo) 분포와 그 변동, 기상위성에 의한 구름 분포의 변동 상황 등을 최신 장비로 파악하고 있다.

기상청이 제공하고 있는 일기예보는 그 예보기간에 따라 초단기예보, 단기예보, 중기예보, 그리고 장기예보와 기후전망으로 나눈다. 초단기예보는 현재부터 6시간 이내, 단기예보는 오늘부터 모레까지, 중기예보는 향후 3일~10일까지의 날씨를 예보하여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장기예보는 순별로 예보하는 1개월 전망과 월별로 예보하는 3개월 전망이 있으며, 기후전망은 다음 계절에 대해 예상되는 기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러한 정보를 인터넷·텔레비전·라디오·신문·모바일 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기상학사』(김성삼, 한국현대문화사대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7)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6)
『조선과학사』(홍이섭, 정음사, 1946)
「삼국사기·삼국유사로 본 기상·천문·지진기록」(기상청, 『한국기상기록집』 제1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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