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은 2율각 1구로 159구이며, 율조는 4·4조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귀글체가 파괴되어 난삽하다.
1935년 10월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발행하던 용천검사(社)의 잡지 『룡쳔검』 제29호에 실려 있다. 이본으로 경상북도 상주의 동학본부에서 1932년에 간행된 목판본 『용담유사(龍潭遺詞)』 제2권으로 소개된 국문본과 국한문 혼용의 2종이 있다.
지은이에 대해서는 “혹운제세주(或云濟世主)의 글이라 하고 혹운 당시 제자(或云當時弟子)의 글이라 하야 작자(作者)는 부지(不知)”라고 백당(栢堂)이라는 이가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천지음양(天地陰陽) 시판후(始判後)에/사정사유(四正四維) 이서스니”로 시작하여 “이런 풍진(風塵) 엇지 할○고/삼년괴질(三年怪疾) 무섭드라.”로 끝맺고 있다.
내용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을 행하며 정심정기(正心正氣)로 심화기화(心和氣和)하여 하느님만 공경하면 지성감천할 것이고, 삼강오륜 법을 삼아 일심으로 인화(人和)를 공부하면 보국안민(報國安民)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이룰 것이니, 열심히 청림도(靑林道)를 깨달아 수도하라”는 것이다.
『용담유사』본 「임하유서」는 ① 지지가(知止歌), ② 경탄가(警歎歌), ③ 도성가(道成歌), ④ 육십화갑자가(六十花甲子歌), ⑤ 연월가(年月歌)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룡쳔검』본의 「임하유서」는 ① 지지가뿐이다. 두 본의 「지지가」가 내용은 같으나, 글귀의 순서가 뒤바뀐 것도 있고, 사용한 어휘들이 서로 다른 것들이 꽤 많다. 분량은 『룡쳔검』본이 23구가 더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의 소개자인 백당이 “이 글은 은도(隱道) 당시에 자미 잇게 읽든 글이든바 이번에 다시 한번 보니”라고 한 것을 보면, 『룡쳔검』본인 이 작품이 좀더 원본에 가까운 듯하다.
항일투쟁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인격을 닦아 선행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 포교가사(布敎歌辭)로서 가치가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창씨개명과 국어말살정책이 치열하던 시대에서도 다양하게 전파된 동학가사의 광범한 전파성과 우리말 지키기의 파수꾼의 소임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