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암문집 ()

자암문집 / 자건주환후진정소
자암문집 / 자건주환후진정소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이민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4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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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이민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4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41년(영조 17) 이민환의 증손 이수태(李秀泰)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익(李瀷)과 이광정(李光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외손 유승현(柳升鉉)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7권 2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부(賦) 3편, 시 14수, 소차(疏箚) 9편, 계사(啓辭) 1편, 서(書) 29편, 제문 4편, 권3·4에 서(序)·발(跋) 각 3편, 묘지·행장·잡저 각 1편, 권5·6에 책중일기(柵中日記) 1편, 녹(錄) 2편, 우분시(憂憤詩) 1수, 권7에 부록으로 행장·신도비 각 1편, 제문 5편, 만사 23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체로 직서적(直敍的)이며 담담한 편이다. 소는 대부분 사직에 관한 것이나, 그 가운데 「자건주환후진정소(自建州還後陳情疏)」는 저자가 병자호란 때 강홍립(姜弘立)의 막료로서 도강(渡江)하여 명군의 지휘를 받아 건주(建州)의 청군과 싸우다가, 어려운 지경에 빠져 힘이 다해 청군과 화의를 맺고 투항한 뒤, 17개월간 계류되었다가 귀국한 경위와 그것이 나라를 팔아먹고 적에게 항복한 것이 아님을 변명한 글이다.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등 삼국의 미묘한 관계와 화약을 맺은 내력을 이에 직접 종사했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명군이 궤멸한 뒤에 건주군과 조선군의 화호담판(和好談判)의 경위를 문답식으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서의 「박약집설서(博約集說序)」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서문으로, 공자(孔子)의 제자 안연(顔淵)의 언행을 『논어』·『맹자』·『예기』·『주역』에서 뽑아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처음에 싣고, 사대예악(四代禮樂)에 관한 것을 중간에 실었으며, 우직동도(禹稷同道)를 끝에 두는 식으로 편차한 것이다. 박약의 두 자는 박아이문(博我以文)과 약아이례(約我以禮)에서 취한 것이다.

「책중일기」는 1618년(광해군 10) 4월에 명군이 청군에게 무순(撫順)과 청하(淸河)를 빼앗긴 뒤 원병으로 총수(銃手) 1만 명을 요구해온 일로부터, 원수인 강홍립의 막료로 종군하여 1620년 7월 압록강을 건너 만포진에 도달할 때까지의 일기다. 이 밖에 건주 만주족의 동태를 자세하게 기록한 「건주견문록(建州見聞錄)」, 제품(祭品)의 사치스러움을 막고 정성을 다한 제수(祭需)의 마련을 주장한 「제품정식(祭品定式)」 등이 있다.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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