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원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후기 원 간섭기 충선왕에 의해 설치된 중앙 관서.
목차
정의
고려후기 원 간섭기 충선왕에 의해 설치된 중앙 관서.
내용

1298년(충렬왕 24) 정월에 즉위한 충선왕이 이해 5월 대대적인 관제 개혁을 단행할 때 설치되었다. 자정원(資政院)은 목축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였고,『고려사』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사(使, 종1품), 동지원사(同知院事, 정2품), 첨원사(僉院事, 종2품), 동첨원사(同僉院事, 정3품), 판관(정5품), 계의관(計議官, 정7품), 계의참군(計議參軍, 종8품)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첨원사 이하의 관직은 임명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같은 해 7월의 관직 임명에서 부사(副使)의 존재가 보이는데, 그 품질이나 첨원사·동첨원사와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에 양부(兩府)라 하면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와 광정원(光政院)을 가리켰으며, 자정원에도 2품 이상의 고위관원이 있었지만 이들은 양부의 재추들로 구성되는 재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같은 해 8월에 충렬왕이 복위하고 12월에 관제를 복구하면서 자정원은 혁파되었다.

한편, 원나라에도 같은 이름의 관서가 존재하였지만, 이는 기황후(奇皇后)의 재부(財賦)를 관장하기 위한 관서였다. 이는 1340년(충혜왕 복위 1)에야 설치되었으므로 충선왕 때 고려에 설치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원사(元史)』
「고려 충선왕의 정치개혁과 원의 영향」(이강한,『한국문화』43, 2008)
「충선왕의 개혁과 사림원의 설치」(이기남,『역사학보』52, 1971)
「기황후의 책립과 원대의 자정원」(이용범,『역사학보』17·18, 1962)
집필자
신안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