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만한인조국광복회는 동북항일연군 제2군의 주요 간부인 오성륜(吳成崙)·이상준(李相俊)·엄수명(嚴洙明) 등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끌어졌다.
이 단체는 한민족이 일치 단결하여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일제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진정한 한인의 인민정부 실현과 조선 독립을 위한 혁명군대의 조직을 목표로 하였다.
조국광복회는 중국 길림성 장백현(長白縣) 일대와 조선 국내의 함경남도 북부 및 평안북도 북부, 함흥·원산·흥남 등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박달(朴達)·박금철(朴金喆) 등 국내 공산주의자들과 제휴하여 1937년 12월 조국광복회의 국내조직인 ‘한인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하였다.
이 동맹은 반일회(反日會)·결사대·농민조합 등 35개의 비밀 조직을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이 단체가 일제 측에게 적발되기 시작한 계기는 1937년 6월에 발생한 함경남도 보천보(普天堡)전투에서 ‘한인조국광복회 목전 10대 강령’이라는 전단(傳單)이 뿌려지고, 1937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보천보전투에 가담하였다가 재차 지령을 받고 혜산읍(惠山邑)에 잠입한 3명이 체포된 것을 단서로 관련자들이 색출되면서부터이다.
수사는 1938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같은 해 9월 박달 등이 체포되면서 종결되었는데, 이 기간의 체포자 총수는 739명에 달했다. 그 중 188명이 기소되었고 지도자인 권영벽(權永壁)·이제순(李悌淳)·박달 등 6명은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박금철 등 4명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리하여 조국광복회 조직은 사실상 괴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