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량(士良), 호는 취은(醉隱). 아버지는 정대중(鄭岱重)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신즙(申楫)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 정시(庭試)에 합격하고, 1756년 생원이 되었다. 1759년 성균관에 있을 때 왕이 입시하여 『대학』 서문을 강(講)하라고 명하는 한편, 지금 세상이 떠들썩하고 사습(士習)이 어지러운 것을 어찌하면 수습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그에 대하여 세도(世道)의 오탁(汚濁)과 사습의 그릇됨은 오로지 위에서의 도솔여하(導率如何)에 달려 있으니 성심으로 바르게 인도하면 모든 폐단은 구완될 것이라고 진언하였다.
그 뒤로 종종 경연문대(經筵問對)가 있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1764년 창락찰방(昌樂察訪), 1769년 성균관전적, 다음해 성균관직강을 거쳐 형조좌랑·사헌부감찰·병조좌랑·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 뒤 어천찰방(魚川察訪)이 되었고, 다시 이조좌랑·지평·장령·보성군수·태안군수·종부시정·군자감정·장악원정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취은일고(醉隱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