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홍원(弘遠), 호는 병은(病隱). 정옥(鄭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대덕(鄭大德)이고, 아버지는 정질(鄭耋)이며, 어머니는 홍우필(洪佑弼)의 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이어 형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여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74년(선조 7) 홍문록에 입록이 되고, 헌납을 거쳐 1577년 부수찬으로 평안도경차관이 되어 전염병이 휩쓸고 있는 도내를 순방하며 구호한 뒤 1581년에 수찬·집의가 되었다.
그 뒤 사간이 되어 이이(李珥)가 삼사의 탄핵을 받자 이를 힘써 변호하였다. 1587년 강원도관찰사로 재직 중 백성의 토지를 빼앗고 또 허락 없이 서울에 들어왔다는 죄로 한때 삭직되었다. 이듬해 도승지가 되고, 전주부윤을 거쳐 1591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참의로서 임금을 평양에 호종, 다시 세자를 따라 강계로 가던 도중 맹산에서 죽었다. 원종(原從)의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