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栢巖). 아버지는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에서 승리, 이어 경주에 진격하여 싸우다가 좌장군 박진(朴晋)의 패전으로 적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하여 혈전을 벌이다가 적에게 사로잡혔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임을 당하였다.
우순사 김성일(金誠一)의 장계로 호조정랑에 추증되고, 1732년(영조 8) 좌승지로 가증(加贈)되었다. 1784년(정조 8) 정려가 내려졌으며, 영천 환고사(環皐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