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종지(宗之). 의주부윤 정경업(鄭慶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숙(鄭橚)이고, 아버지는 정태구(鄭台耉)이며, 어머니는 김진곤(金振坤)의 딸이다. 민정중(閔鼎重)의 문인이다.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90년 영산현감으로 재직 중 백성을 착취하고 도로가 조악(粗惡)하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99년 사간원정언으로 기용되었으며, 이듬해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이 때 허균(許筠)의 시를 간행하여 죄를 입은 박태순(朴泰淳)이 외직에 임용된 것에 대한 인사행정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 뒤 금산군수를 거쳐 1705년 장령에 다시 기용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정언으로서 종친의 정치간섭 배제, 세자의 정치참여 요청 등의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1710년 당쟁을 일삼은 죄로 파직되었으나 1712년 장령으로 복직되었으며, 그 뒤 동부승지·경주부윤을 거쳐 1717년 우승지에 이르렀다. 솔직하고 성실하였으며, 정사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부하들을 엄숙히 단속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