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양평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토기류 · 석기류 · 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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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토기류 · 석기류 · 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개설

제천 양평리유적은 남쪽에 표고 530.2m의 관봉, 서쪽에 642m의 주봉산, 동쪽에 525m의 비봉산 등의 야산에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남한강의 상류 동쪽에 있는 작은 충적평야에 입지한다.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1982년 서울대학교에서 발굴조사하였다. 발굴조사에 앞서 행해진 지표조사를 통해 이 일대에서 바퀴날도끼[環狀石斧]와 많은 양의 민무늬토기편이 채집되었고, 이어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집자리[住居址] 1기와 적석유구(積石遺構)가 확인되었다.

내용

집자리는 평면 장타원형으로, 크기는 600×400㎝이다. 내부의 화덕자리[爐址]는 돌두름식[圍石式]으로 중앙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친 곳에 강돌[川石]을 돌려세워 조성하였다. 집자리 바닥에서 유사(類似) 빗살무늬토기편[櫛文土器片]·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편[口脣刻目孔列文土器片]·붉은간토기편[丹塗磨硏土器片]·그물추[漁網錘]·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돌도끼[石斧]·돌칼[石刀]·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자귀[石手斧]·돌화살촉[石鏃] 등의 석기류가 수습되었다.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청동기시대의 집터로는 광주(光州) 송암동유적이 있다. 그리고 타원형이 아닌 원형의 집터는 시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부여 송국리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조사되었다.

집터 안에서 출토된 토기류 가운데 빗살무늬계통의 토기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전형적인 토기인데, 양평리 유적 출토 빗살무늬토기는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와는 몇 가지 다른 점이 보인다. 먼저 바탕흙이 정선되어 매우 치밀하고 문양 자체도 단순히 짧은 선들을 교차시켜 생선뼈무늬와 비슷한 인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유사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가끔 나타나는데, 파주 교하리·옥석리, 여주 흔암리 등에서도 이와 같은 토기편이 출토된 바 있다. 두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유적인 점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화덕에서 출토된 토기편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본 결과,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는 모두 573℃ 이하에서 구워졌고, 민무늬토기의 경우 석영과 장석이 균형있게 섞여진 반면 붉은간토기의 경우 석영이 장석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섞였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영산강유역의 민무늬토기 분석 결과와도 일치되는 것으로서 당시 토기제작에 있어서 공통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토기 분석 결과, 토기가 서기전 7세기경에 구워졌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화덕에서 채집한 목탄(木炭)시료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와 일치하고 있다. 즉, 방사성탄소연대는 2,785±168 B.P.로 측정되어 주거지의 연대가 최소한 서기전 7세기 이전에 해당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제천양평리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전통이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초기의 생활 유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남한강 상류 유역에서 사냥과 채집, 어로와 농경 등의 혼합경제를 바탕으로 생활하였던 집단의 유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지석묘연구』(김재원·윤무병, 국립중앙박물관, 1967)
「제원명오리B지구유적발굴조사보고」(최무장, 『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고고·고분분야』Ⅱ, 1984)
집필자
임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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