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계무(季武),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조성제(趙聖躋)이다.
어려서 형 유선(有善)과 함께 김원행(金元行)을 사사하였으며, 1796년(정조 20) 개성유수에 의하여 지산초당(芝山草堂)에서 교육에 힘쓴 공으로 중앙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1801년(순조 1)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개성에 있는 숭절사에 배향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송상현(宋象賢)·김연광(金鍊光)·유극량(劉克良) 등 삼충신에 관한 글을 모은 책 『삼충록(三忠錄)』의 발문을 썼다.
1824년 독학역행(篤學力行)한 그의 공덕을 포증(褒贈)하여야 한다는 개성유생들의 청으로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나산사(蘿山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