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순기(舜起), 호는 수산(睡山). 아버지는 형조참의와 동부승지를 지낸 조규년(趙奎年)이며, 어머니는 해평 윤씨(海平尹氏)로 윤정렬(尹鼎烈)의 딸이다.
31세 때인 1855년(철종 6)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는 참봉이 되어 진산군수에 음서(蔭敍)되었다.
1874년(고종 11)에는 함열현감에 제수되어 이듬해 1월에 현지에 부임하여 남원·진산·익산·금산·고산(高山)·운봉(雲峰)·용담(龍潭)·함열 등 8읍의 봉세(捧稅)를 받아, 1만6천여석의 곡식을 12척의 큰 배에 싣고 서강의 광흥창(廣興倉)까지 운반하기도 하였다. 저술로는 국문가사 「도해가」 1편과 한문으로 지은 『을해조행록(乙亥漕行錄)』 1책이 있다.